일본의 기술함정에서 살아나는 법(하이브리드 신화에서 깨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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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술함정에서 살아나는 법

– 하이브리드 신화에서 깨어나라 –

이태왕 아이치대학 교수

최근 일본 자동차시장의 소비구조에 기현상이 나타내고 있다. 660㏄급 경차의 신차 판매가 승용차 전체의 39.3%를 차지하고 하이브리드 차량이 17.3%까지 확대됨으로써 이들의 비율은 60% 가까이에 이르렀다(2013년도). 특히 도요타는 2014년 상반기에 하이브리드 차량 비율을 처음으로 50%를 넘겼다. 100만~200만 엔 사이의 저가 자동차가 주로 판매되고 있다는 뜻이며, 이러한 경향이 가속되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인의 검소한 소비성향은 과거 칭송의 대상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배울 점이 많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저소비 나선형으로 치닫고 있는 일본적 소비성향과 이에 연관된 일본 제조업의 우울한 이면에 대해 살펴본다.

 

(1) 저소비 일본사회의 신기술 개발의 고뇌

 

유독 일본에서 경차 판매비율이 높은 이유로는 일본 독자적인 차량규격이 정착됐고 오랫동안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자동차 내수판매가 일정하게 유지되더라도 저가 자동차의 판매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소비자의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있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기업의 수익성 저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내수침체의 주된 원인은 기본적으로 기업 측에 있다. 실질임금 상승을 억제해 이윤을 확보하고 그 자원을 설비확충과 연구개발에 투입함으로써 항상 최고 수준의 기술과 신제품을 선보였다. 물건을 꼼꼼히 만들어 내다팔기만 하면 특히 수출시장에서 어김없이 잘 팔렸다. 그러나 ‘축소 지향적인 일본’ 제조업은 ‘확대 지향적인 한국’ 제조업의 부상으로 말미암아 황혼기를 맞이한 듯하다.

 

문제의 핵심은 일본이 여전히 소비능력 및 기호와는 동떨어진 제품을 만드는데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기차 개발(미쓰비시) 및 전 차량 하이브리드 전략(도요타)인데 세계시장 기준에서 보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은 아직 양산소비단계의 제품이 아니다. 일본제 휴대폰의 글로벌화 실패 사례가 그러했듯이 자칫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할 공산이 크다. 일본 자동차시장은 아래 표와 같이 잘 팔리는 저가 자동차와 정부보조금(세금)을 경품으로 끼워 파는 하이브리드 또는 전기차로 양극화됐다. 이러한 시장동향은 실질임금 상승을 자제하고 절제하는 일본적 고용관행이 낳은 부작용이며, 아베노믹스의 임금인상 정책을 가로막는 역풍으로 작용하고 있다.

(표) 엔진 유형별 차량가격 비교(일본 내수, 소비세 8% 포함)

 (2) 《V자 기술혁신 곡선 함정》 가설

 

도요타는 2014년 연말까지 자사 최초의 연료전지차를 출시한다. 700만 엔 가격에 정부 보조금 200만 엔을 공제하면 500만 엔 수준의 중산층 고객의 확보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수소충전소 설비가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내수시장 초토화’작전을 추진해 경쟁사를 따돌린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1997년 12월 최초의 하이브리드 차량 프리우스(Prius)를 선점 투입해 성공했을 때의 전략과 유사하다. 이러한 선행 투자의 움직임은 일찌감치 전기차 제조를 자체개발에서 테슬라 모터에 위탁개발로 전환해 리스크 헤징의 실리를 도모한 사례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렇다면 연료전지차가 시장성이 있는 것일까? 필자의 답은 ‘No’이다. 도요타중앙연구소에서 만든 시작차를 공로주행 시험으로 옮기는 수준으로 보아야 한다. 현대기아차의 수소 연료전지차의 글로벌 공세를 차단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일본의 자동차 판매의 주된 고객은 100만 엔대의 저가의 경차와 200만 엔대의 양산 하이브리드 차량에 집중돼 있다. 전기차 수요는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단체의 주문으로 이뤄지는 수준이며, 500만 엔을 호가하는 연료전지차의 판매는 연소득 1000만 엔 이상의 고소득층이 아니면 기대하기 어렵고(월 소득 50만 엔×10개월≒500만 엔) 동일한 소득이라면 크라운이나 렉서스를 선호할 것이다.

 

V자 기술혁신 곡선의 단층구조

 

 

필자는 이와 같은 단층구조 현상을 《V자 기술혁신 곡선 함정》 가설로 규정하고 있다. 가솔린 엔진 자동차의 경우 소형에서 대형까지 폭넓은 가격대를 형성해 소득수준 차이에 맞는 마케팅이 가능했으나, 배기량과 연비효율 사이의 반비례 관계를 최대의 숙제로 안고 있었다. 환경친화형 엔진 자동차의 경우는 연비효율의 향상에 비례해서 가격도 상승하므로 소득층 간 불균형 문제를 노정시킬 소지를 안고 있다.

 

위 그림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① 경차와 그 이외의 차량 구매자 사이의 소득수준 분단현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② 전기차와 그 이외의 차량 사이에 존재하는 기술체계의 이질성을 극복할 수 있는가?

③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해 연료전지차가 보완적인 제품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비즈니스의 측면에서 보면 자동차 엔진의 기술혁신은 V자 기술혁신 곡선의 ‘우측 3부능선’에서 멈춰서 있다고 봐야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요타가 하이브리드 차량 등에 올인을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의 《V자 기술혁신 곡선 함정》 가설을 따른다면 많은 자동차 기업이 기술선택 문제로 또는 경영자원의 부족으로 전략의 혼맥상을 드러내면서 경영이 위태로질 것이라는 서바이벌 게임 룰을 간파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3) 한국 자동차산업에의 시사점

 

요즘 각국 정부당국, 업계 이익단체 등이 모두 자동차 신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나섰다. 물론 국익이 걸린 자존심의 대결이니 정부의 대응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업계가 새로운 수종사업 선정에 고민한 나머지 힘겨루기 게임에 동참하는 데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지만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은 화석연료가 고갈되지 않은 한 세계시장에서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으며(일본 자동차시장의 갈라파고스 현상), 연료전지차의 경우도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세금 징수를 늘리지 않는 한 역시 양산 소비가 어려운 품목이다.

 

도요타를 비롯한 굴지의 자동차 그룹이 한결같이 《V자 기술혁신 곡선 함정》을 쳐놓고 경쟁사가 빠져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현대기아차 그룹은 도요타가 선도하는 하이브리드와 같은 차량개발 랠리에 섣불리 끼어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분명 위험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현대기아차의 시장 확대정책과도 상반되는 기술전략이기 때문이다. 다만 함정의 위치와 사냥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적정 수준의 연구개발 지속). 이른바 개척자 리스크(Pioneering costs)를 사서 덮어쓸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일찍이 헨리 포드를 불러 전기차 개발을 종용했던 전기의 시조 에디슨이 포드의 설득을 받아들여 포기한 사업이 바로 전지를 장착한 전기차 사업이었다. 세계 자동차산업 역사를 한번 되돌아봐 주기를 바란다.

 

주: 이 글은 2014년 4월 11일, KOTRA 나고야무역관과 나고야 한국총영사관이 공동주최한 〈한국자동차부품의 일본시장 진출을 위한 전문가 라운드테이블〉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의 일부를 반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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